이 영화는 봐도 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 - 제임스 건이 하고 싶은 걸 다 했을 때.

초이승 2021. 8. 2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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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기대했던 영화, 제임스 건 감독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늦었지만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사실 친구와 함께 보기로 했는데 이 친구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혼자 보고 왔습죠.

그래도 결론적으로, 후회없는 132분이었습니다. 제가 올해 본 영화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라고 느껴집니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몰입해서 봤네요.

 

물론 취향을 아주 심하게 타는 B급 감성의 영화인 만큼 누군가에겐 최악의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제 앞에서 영화를 보던 다른 분들이 영화가 끝나고 이런 영화인 줄 몰랐다고 얼굴이 헤쓱해져서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거든요. 아마 속이 안 좋으신 것 같던데, 무사히 집에 돌아가셨길 바래 봅니다.

 

가볍게 왔다가 충공깽 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DC 유니버스 영화들은 사실상 몇몇 영화를 제외하곤 황폐한 수준이었습니다. 맨 오브 스틸, 아쿠아맨, 원더우먼 정도를 제외하면 평가와 성적을 모두 잡은 작품이 거의 없었죠. 오히려 DC 딱지 떼고 온(...) 조커나, 새롭게 돌아온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이 오히려 팬들의 더욱 큰 지지를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악당들이 세상을 구한다' 는 매력적인 설정을 가지고 할리퀸, 조커 등 인기 빌런 캐릭터에다 배트맨, 플래시 등의 특별 출연 지원사격까지 받아 세상에 나온 이 영화는 워너의 지나친 개입 때문인지, 아니면 에이어 감독의 역량이 부족했던 건지, 뭐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듦새가 엉망이었습니다. 그 화제성 덕분에 흥행에는 크게 성공했지만, 옆 동네 마블이 영화만 냈다 하면 평가와 흥행을 다 잡는 것에 비해 항상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결과물만 나오는 DC 입장에선 속이 좀 쓰릴 성적이었죠.

평가가 깎인 가장 큰 원인은 캐릭터의 활용이었습니다. 아무리 얘네가 세상을 구한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살인, 방화, 절도 등 본질이 범죄자인 캐릭터들을 그저 착하고 정의로운 듯이 연출해 놓았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제대로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 채 혹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유일한 발견은 '할리 퀸' 뿐이었죠.

 

어디서나 존재감 뿜뿜. 다른 캐릭터 존재감은 뚝뚝

 

그 할리 퀸을 내세운 이후 작품, 버즈 오브 프레이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딱 그냥저냥 수준이랄까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이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사람들이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B급 감성의 연출력 하나는 확실하게 인정받은 제임스 건이 연출하는 세상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라니, 솔직히 그 감성을 너무나 좋아하는 저로선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애들이 세상을 구합니다.

영화는 기대대로였습니다. 제임스 건이 이미 언급한 대로, 캐릭터들은 가차없이 죽어나갑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포스터에 실린 캐릭터 중 3분의 2가 죽습니다. 아주 버라이어티 하게요. 스포일러를 최대한 줄이고자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꽤나 의외의 죽음도 있습니다. 

 

이중에 절반 이상이 영화 시작 10분만에 죽는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죽음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상당히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뜻입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듯 킹 샤크가 사람을 세로로 찢는 모습도 나오고, 뭐 얼굴에 총을 맞거나, 목을 날리거나, 불에 태우거나 하여튼 다양하게 죽고 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잔혹한 연출이 오히려 이들이 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더 좋았습니다. 애초에 사람 죽이는 걸 신경도 안쓰는 빌런 놈들이 모인 팀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폴 버호벤의 '폭력성이 도를 넘으면 비현실적으로 보여 오히려 농담처럼 보인다' 는 말처럼 이 영화는 저같이 애초에 이런 걸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낄낄거리며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이지만, 내성이 없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전 작품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정도의 영화를 생각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오히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보다는 더 옛날 작품인 슬리더, 슈퍼 등과 더 닮았다는 평도 있으니까요.

 

슬리더는 요런 느낌의 영화입니다. 대충 감이 오시죠?

 

전개 역시 속도감 있게 진행됩니다. 새로운 캐릭터들의 설명을 질질 끌지 않고 쉽고 빠르게 넘어가며, 이들이 작전에 투입되는 이유와 배경도 짧고 굵게, 관객에 머릿속에 주입시킵니다. 괜히 질질 끌면서 얘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 이런 거 없습니다. 그냥 얘도 나쁘고 쟤도 나쁘고 그래서 작전 나갔고 그리고 빵! 다 죽고. 이게 영화 시작 후 십분 동안 벌어지는 일입니다. 바로 관객을 정신없게 휘몰아치죠.  

 

작전에 투입된 특공대 느낌이 물씬 납니다. 애초에 그런 영화들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죠.

 

캐릭터들의 캐릭터성 역시 확고합니다. 다들 어딘가 정신나가고 나사빠진 듯이 행동하지만 후반부 반전이 드러나고 캐릭터들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게 되기 까지의 서사가 탄탄하고 자연스럽게 관객이 그들에게 이입하게 만들죠. 이건 완전히 감독의 역량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DC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캐릭터들만 골라 출연시켜 이정도로 활용한다는 건 그저 제임스 건 감독이 이런 쪽 연출로는 현재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독이, 재량권을 얻고 자기 꼴리는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찍었다? 아, 이건 못 참죠. 바로 명작 나와버리는 겁니다.

 

왜 마블이 허겁지겁 복귀시켰는지를 증명한 제임스 건. 인성과 실력은 비례할 수 없는 걸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물론 저에겐 없었습니다만, 앞서 말했듯 과한 폭력성과 잔혹성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분명하며, 어찌 되었건 도덕성이 결여된 채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큰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하죠. 뭐, 그래도 저는 딱 유쾌하게 볼 수준이었습니다. 진짜로 사람 속을 박박 긁는 그런 영화가 아닌, 그냥 대놓고 유쾌하라고 내놓은 영화이니까요.

 

미국의 패권주의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 점도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냥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어찌 되었건 한국에도 코리안 피스메이커들이 여럿 보이는 요즘에는 왠지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존 시나의 오랜 팬으로서 변신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빨리 피스메이커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별점: ★★★★☆

견딜 준비가 되었다면 그 무엇보다 즐거운 롤러코스터 같은 132분. 

 

개인적으로는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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