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문화 생활을 좀 하려고 넷플릭스에 들어갔지만, 대체 뭘 봐야 할 지 모르겠어서 결국 아무것도 안 보고 유튜브로 넘어간 경험.
마치 풍요 속의 빈곤처럼, 너무 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선택장애를 갖게 되는 그런 경험. 그래서 결국 돈이 아까워지는 그런 경험.
그런 경험을 최소화하고자 넷플릭스 추천글을 주기적으로 써 볼까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감독을 보고 당황하지 말자. 비록 이 감독의 전작이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라는 빅 똥이기 때문에 시네필들이 흠칫 할 수 있지만, 또다른 개꿀잼 영화 ‘루퍼’를 그 전에 만들었던 양반이다. 나이브스 아웃이 잘 뽑힌 걸 보면 퐁당퐁당으로 좋은 영화를 찍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저예산 특화 감독이거나.
시놉시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가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다. 자살이 유력해 보이지만, 무언가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알 수 없는 인물에게 고용된 탐정 ‘브누아 블랑’이 저택에 등장하는데…
탐정 브누아 블랑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
망나니 아들 랜섬 역의 크리스 에반스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 할란 트롬비 역의 크리스토머 플러머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도 특징이다. 연기력으로 빠지지 않는 배우들 답게, 나이브스 아웃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앙상블에서 나타난다. 마치 한 편의 추리 연극을 보는 듯한 촘촘한 각본을 배우들이 완벽하게 묘사해낸다.
--스포일러 주의--
85세의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 할란 트롬비, 하지만 자식들은 다들 반푼이들이다. 자신의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식들에게 실망한 할란은 그의 생일날, 모든 지원을 끊고 스스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바로 다음 날, 죽은 채 발견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찰은 자살로 처리하려 하지만 익명의 누군가에게 고용된 탐정, 브누아 블랑이 등장하고, 저택의 모두를 용의선상에 올린 채 수사를 시작한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가져가는 것은 할란의 개인 간호사, 불법 이민자의 딸 ‘마르타’와 탐정 ‘브누아 블랑’, 그리고 망나니 첫째 손자 ‘랜섬’이다.
사실, 할란의 죽음은 영화 초반에 밝혀진다. 모르핀 주사와 약물 주사를 혼동한 마르타의 실수를 덮어주기 위해 할란의 트릭대로 ‘자살’을 위장한 것. 이에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병이 있는 마르타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기 위해, 브누아 블랑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다른 가족들은 모든 유산을 상속받게 된 마르타를 어떻게든 끌어내리기 위해 애를 쓰며 하나의 소동극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르타를 도와주는 듯 했던 랜섬이 사건의 배후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모든 유산을 마르타가 물려 받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이브스 아웃의 가장 큰 매력은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받아 연기하는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마치 하나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 각자 개성이 확실한 캐릭터들을 통해 감독은 미국의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리버럴과 공화당, 극단적 보수주의자, 히피 등… 각자 지향하는 바가 분명한 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이성적이며 똑똑한 척 하지만 유산을 빼앗기게 되자 각자 ‘돈’만을 쫓는 모습을 보인다. 라이언 존슨이 PC에 굉장히 진심인 감독인 걸 보면 아마 의도적으로 이러한 캐릭터를 설정한 듯 싶다.
거기에 브누아 블랑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탐정 역에 너무나 찰떡이었다. 괴짜 탐정이면서도 분노할 때는 확실히 분노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다니엘 크레이그가 아니면 누가 맡을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완벽히 들어맞았다. 다소 무거운 007역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확실히 베테랑 배우 짬바 어디 안 간다.
조연으로 출연한 마이클 섀년, 제이미 리 커티스, 돈 존슨, 캐서린 랭퍼드 등도 모두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상류층인듯 하지만 초반 기품있는 모습에서 점차 껍질이 벗겨지며 나타나는 실제 모습들이 아주 볼만하다.
추리물로서의 정체성 역시 확고하다.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는 초반에 풀렸지만, 이를 막기 위한 마르타와 파헤치는 브누아 블랑, 그리고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제3자에 대한 미스터리 등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하나의 진실로 다가가는 연출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집중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배우들의 약간은 과장된 듯한 연기는 오히려 고전적 느낌이 나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연출 역시 과하지 않고 훌륭했다. 각본 역시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당신이 무더위에 지쳐 무슨 영화를 봐야 할지조차 생각하기 싫다면, 무지성으로 봐도 좋을 만큼 훌륭한 영화다.
별점 : ★★★★☆
여담: 번역가가 '황석희'다. 별점 0.5 추가. 믿고 봐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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