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를 쥐 잡듯이 잡아먹는 동료, 사장의 딸랑이를 자처하는 상사. 이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어느새 자신 역시 일의 노예가 되어버린 ‘데릭’(스티븐 연). 상사의 음모로 회사에서 억울하게 잘린 그가 짐을 챙겨 나가던 그때, 정부에서 사람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며 회사 건물을 봉쇄하기 시작한다. 감염 증세가 사라지고 봉쇄가 해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8시간! ‘데릭’은 드디어 직장상사(死)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데… 바이러스 감염 시 살인, 폭행 등 법적 책임 면제?! 당신을 대리만족 시켜줄 짜릿한 오피스 킬링 액션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소개해 온 영화들을 보시면 아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팝콘 무비를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의 임계치가 낮아서 왠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게 보긴 합니다만, 굳이 관객에게 생각과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머리를 비우고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영화에는 특히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죠.
그런 면에서 2017년작, 메이햄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질질 끌지 않는 전개 속도, 피와 유혈이 낭자한 화면, 화끈한 복수 등등..
이제는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스티븐 연과 사탄의 베이비시터 등 B급 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사마라 위빙이 극의 투 톱으로 출연합니다. 젊은 배우들이기에 물음표가 달릴 수 있겠지만 기대보다 훨씬 훌륭하게 극을 힘있게 이끌어 갑니다.
데릭은 변호사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성공'을 쫓아 타워스 앤 스미스라는 거대 로펌에 입사하게 되죠. 회사의 부품으로서 살아가던 그는 ID-7이라는 바이러스와 관련된 건에서 큰 공을 세워 빠른 출세가도를 걷게 됩니다. ID-7바이러스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극도로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며, 자제력을 상실한 채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죠. 데릭이 소송에서 해낸 것은, 이 바이러스에 걸린 살인범이 바이러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거라는 일종의 '심신미약' 논리를 가지로 법의 헛점을 이용, 무죄를 만들어낸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데릭은 은행 대출로 인해 집을 압류당한 멜라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부탁을 자신도 어쩔 수 없다며 거부하죠. 경비를 불러 멜라니를 쫓아낸 직후, 상사인 카라에게 호출되어 그녀를 만난 데릭은 카라가 자신이 맡았던 소송건의 실패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길 생각이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데릭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회사 중역들과 사장을 찾아가지만, 이미 사장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던 카라를 이길 순 없었고, 데릭 역시 경비들에게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죠.
이 와중, 갑작스럽게 사무소 건물이 통째로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 의해 격리되어버리고, ID-7바이러스가 사무소 내에서 감지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격리된 공간 내에서, 데릭 역시 감염의 징후가 나타나고, CDC는 중화제를 투입했으니 바이러스가 중화되는 8시간 후에 격리가 해제될 것이라 하고, 그 8시간 동안은 회사 내에서의 일들에 아무런 제지를 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데릭은, 동료인 이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장에게 향하려 하지만 사장의 보디가드들에게 두들겨 맞은 뒤 창고에 갇히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이 쫓아낸 멜라니와 다시 재회합니다. 그리고 둘은, ID-7에 감염되어 있을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을 버린 회사에게, 그리고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중역들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건물의 꼭대기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빠른 전개, 한 층씩 올라가는 주인공들. like 사망유희?
멜라니와 데릭은 지하실에서 재회합니다. 첫 인상이 엉망이었기에 재회하자마자 싸움부터 벌이죠. 하지만 이내 그들은 그들에게 공통의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데릭에게는 자신을 모함하고 해고한 상사 카라와 사장 타워스, 멜라니는 가족의 은행 대출에 대한 사실을 숨긴 이사진 '아이린'. 그리고 이들은 손을 잡습니다.
사실, 이러한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 '스토리'는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목표하는 바는 정교한 스토리와 플롯을 이용해 관객을 감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토리와 플롯은 이들의 복수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왜 이들이 저들을 죽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관객에게 납득시킬 수만 있으면 됩니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배경 설명이 아닌, 어서 빨리 주인공들이 저 악당들을 찌르고 베고 때리며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한 점에서, 메이햄은 꽤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캐릭터 설명과 선악구분은 영화 초반 10~20분이면 끝납니다. 이제 죽게 될 캐릭터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시작하는 것이죠. '잘 봐, 아주 짜증나지? 얘네가 나쁜 놈들이야. 이제부터 얘네한테 복수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니까 잘 보라구', 라는 식이죠.
쓸데없는 요소는 모두 쳐내고 깔끔하게 액션에만 집중한 연출은 오히려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기대감을 키웁니다. 또한 코미디 요소를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터라 약간은 과장된 연출 역시 자연스럽게 넘어가집니다. 뭐 어때요, 유쾌하면 장땡이지.
캐릭터들의 활용 역시 저는 좋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캐릭터를 잘 만든 캐릭터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 조커의 '아서 플렉' 같은, 뭔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죠.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잘 만든 캐릭터는,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관객이 몰입만 할 수 있다면, 그 캐릭터는 좋은 캐릭터로서 기능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볼 때, 데릭과 멜라니는 충분히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입니다.
복잡한 심경을 가진 채로 살아왔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됨에 따라 결국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본능에 따라 달려드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표현한 두 배우가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또한, 마치 '사망유희'처럼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한 층 한 층 올라가 그 층의 보스격 인물들을 죽이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방식의 연출은 이미 식상하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클래식한 연출이죠. 이 부분도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액션의 방식 역시 새롭습니다. 그야말로 '사무실 개싸움'이 뭔지 보여줍니다.
지하실 공구함에서 찾은 각종 공구들로 무장한 채 한때 동료들을 학살하며 올라가는 데릭과 멜라니, 그리고 서로 사무용품들을 이요해서 신나게 지지고 볶는 사람들.. 확실히 '사무 공간'에서 '사무 용품'을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영화는 별로 본 적이 없던 터라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커터칼과 송곳, 연필, 가위 등이 아주 무서운 공구라는 것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로맨스와 2% 부족한 잔혹함
앞서 제가 복수 외의 모든 것을 덜어내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만... 사실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코미디 서사를 기반에 깔고 가는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잠깐 데릭과 멜라니의 로맨스로 빠집니다. 물론 선남선녀 배우들인 만큼 뭐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만, 굳이 없어도 되는 씬이기에 굳이 따지자면 일종의 서비스로서 넣은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사마라 위빙이 예뻐서 나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아쉽다면 아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생각보다 표현 수위가 낮아서 놀랐습니다. 인간이 이성을 잃고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는 바이러스의 설정 덕분에 더욱 강한 표현 수위가 나오지 않을까 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잔인하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 좀 더 화끈한 수위를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실망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물론 이 덕분에 좀 더 라이트한 팬들을 많이 끌어 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요.
총평
애초에 작품성을 기대하고 보는 영화가 아닌 만큼, 이러한 장르의 팬이시거나, 머리를 비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확실한 팝콘 무비가 될 것입니다. 폭력의 수위는 생각보다는 낮으나, 이러한 장르가 낯설거나, 두려운 분들에게는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시청에 주의를 요합니다.
초이승은 이 영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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